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 (문단 편집) === [[아현동]] 시절 === || [[파일:ni_out.png|width=100%]] || [[파일:ni_gate.png|width=100%]] || || 성당 외관 || 입구의 [[성 니콜라스]] 모자이크화 || || [[파일:nico170913.jpg|width=100%]] || || 내부 전경 || || [[파일:IMG_3972.jpg|width=100%]] || [[파일:ni001.jpg|width=100%]] || || 성화벽과 지성소의 모습 || 성화벽, 독서대, 주교좌 등이 보이는 모습 || || [[파일:ni002.jpg|width=100%]] || [[파일:ni004.jpg|width=100%]]|| || 돔에 그려진 [[예수]]('만물의 주관자' 이콘) || 천정 모습 || 지금이야 한국의 다른 그리스도교회의 대표 건축물과 달리 작은 규모의 성당이지만,[* 그래도 겉보기와 달리 들어가보면 꽤 크다.] 당시로서는 한국 정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제대로 짓는 성당 건물이었다. 1956년, 신도 총회의 결의로 러시아 정교회 북미대관구 일본정교회 소속에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남북미 대관구로 소속 변경을 한 상태였고, 게다가 정교회 공동체를 재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한 것이 그리스 종군사제와 이후에 파견된 선교사제들이었던 만큼 건축 양식과 성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19세기 러시아풍이 아닌 전형적인 그리스-비잔티움 양식으로 바뀌게 된다. 정방형 십자가와 거대한 중앙돔을 지닌 지금의 성당 건물도 바로 그런 흐름에서 나온 것이었다. 성당은 [[경희대학교]] 건축학과 교수를 역임한 건축가 조창한의 설계로 1968년 완공되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. 조창한 교수는 처음에는 [[밀워키]]에 있는 정교회 성당 건축을 참고하여 첫 설계도를 내었지만, 너무 현대적인 디자인이 당시 한국 유일의 정교회 성당인 성 니콜라스 성당이 가지는 대표 위상과 맞지 않다는 의견을 수용해, 돔과 이를 지탱하는 4개의 아치를 중심으로 하는 비잔티움 양식의 정석대로 건축을 한다. 다만 [[하기아 소피아]] 등에서 볼 수 있는 '펜던티브(Pendentive)'는 빠져있다. 재료는 시간과 비용 문제로 전통적인 벽돌을 활용한 건축 대신 철근 콘크리트를 활용한 방식으로 건축을 했다.[* 돔의 경우 철골로 먼저 반구 형태의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철판을 덧댄 뒤 지붕에 올리고 그 위에 다시 동판을 덧씌웠다. 지금도 대성당을 상징하는 이 둥근 지붕 모양의 청록색은 바로 동판이 산화되면서 나온 색이다.] 처음에 만들어진 대성당 내부는 지금의 내부처럼 화려하지는 않았다. 재정적인 여건과 선교가 이제 막 이뤄지던 공동체라 성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만을 확보하는게 먼저였고, 내부는 하얀 벽으로만 남은 채 이코노스타시스(성화상대)와 몇 점의 [[이콘]]만이 성당을 꾸미고 있었다. 지금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돔과 벽면을 가득 채운 이콘들은 1990년 소조스 야누디스 아테네대학교 미술대학 교수팀이 그린 것이다. 이후로도 소조스 야누디스 교수는 국내 정교회 성당에 이콘 봉사를 하고, 특강 및 이콘 화법 전수 등을 한국에서 종종 하고 있다. 이때를 기점으로 지금 우리가 아는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모습이 완성이 된다. 성당 건물은 1978년 한국 교구장을 겸임하던 뉴질랜드 관구 대교구 교구장 디오니시오스 대주교에 의해 축성(祝聖)됐다. 지금의 종탑 또한 같은 해 [[그리스]] 정부의 기증으로 세웠으며, 그리스 군수공장에서 생산된 세 개의 종이 달려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